창세기 15장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이 언약 체결은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룻을 가나안의 왕들에게서 구출하기 위한 전쟁을 겪고 난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본부인에게서 난 장자는 그 다음 기업을 이룰 자로 유목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귀한 언약의 말씀을 이미 주시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에게는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시종들 중에 하나인 다메섹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울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창15: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에 대한 언약을 다시금 확증해 주십니다. 18절에 보면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בַּיֹּ֣ום הַה֗וּא כָּרַ֧ת יְהוָ֛ה אֶת־אַבְרָ֖ם בְּרִ֣ית לֵאמֹ֑ר לְזַרְעֲךָ֗ נָתַ֨תִּי֙ אֶת־הָאָ֣רֶץ הַזֹּ֔את מִנְּהַ֣ר מִצְרַ֔יִם עַד־הַנָּהָ֥ר הַגָּדֹ֖ל נְהַר־פְּרָֽת׃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행하신 특별한 의식은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것인데요, 위 구절에서 이 모든 의식을 마치고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함께 "언약을 세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언약 체결을 표현하는 동사는 כרת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동사는 성경의 다른 본문들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왕하11:4; 대하21:7; 출23:32; 스10:3 등).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이 동사의 기본의미가 "자르다"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르다"와 "언약 체결"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미는 창세기 15장에 나와 있는 "특별한 의식"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물들을 쪼개어 쪼갠 사체의 조각을 마주보게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고대 사회의 계약 체결 형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중요한 계약을 맺을 때, 동물들을 쪼개어 양 옆에 놓고 그 사이를 두 사람이 지나가면서 의식을 치루게 됩니다. 이 의미는 만약 쌍방 중 한 쪽이 계약을 위반할 경우 몸이 둘로 쪼개어진 동물들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쪼개다"의 의미를 가진 כרת 동사가 동시 "계약을 체결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잔혹한 방식의 계약은 그만큼 그 계약의 중요성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계약은 쌍방의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17절에 보면 쪼개진 동물의 사체들 사이를 지나간 것은 오직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וַיְהִ֤י הַשֶּׁ֨מֶשׁ֙ בָּ֔אָה וַעֲלָטָ֖ה הָיָ֑ה וְהִנֵּ֨ה תַנּ֤וּר עָשָׁן֙ וְלַפִּ֣יד אֵ֔שׁ אֲשֶׁ֣ר עָבַ֔ר בֵּ֖ין הַגְּזָרִ֥ים הָאֵֽלֶּה׃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는 계약 수행의 의무가 아브라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말해줍니다. 창세기나 출애굽기 초반부에서는 족장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잘못이나 죄를 지어도 처벌받거나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계약 준수의 의무가 이들에게는 없었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계약의 장면은 하나님의 이 세상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후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계약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시내산 계약"입니다. 이 계약의 골자는 바로 율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계약은 창15장의 계약과는 달리 "조건적인 계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כרת (계약을 체결하다) 동사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