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

본문: 창 1:2

작성: 알파알렙 (kks@alphalef.com)
작성시간: 2019-08-30 11:51:03
조회수: 3006



 

창세기 1:2은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실 때(1:1 ברשאית 구문에 관한 앞의 글 참조) 이 세상에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창세기 1:1-2을 연결하여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시작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רוח אלהים(루아흐 엘로힘)은 물 위를 מרחפת(메라헤펫)하고 있었다.”

위 구절에서 רוח אלהים은 다양한 성서 번역에서 “하나님의 신/영”(개정개역, NIV), “하나님의 바람”(JPS)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히브리어 רוח는 구약성서에서 350번 사용되고 있는데 “바람”(출15:8, 10), “영”(창6:3; 출31:3), “숨”(욥19:17)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단어는 70인역 그리스역에서 πνεῦμα(프뉴마)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단어 역시 “바람”, “영” 등으로 해석된다. 특히 신약성서에서 “성령”(행2:4)으로도 번역되는 말이다.

그런데 구약과 고대 근동의 배경에서 살펴보면 그 의미는 좀 달라진다. 많은 학자들은 구약의 창조 이야기와 바빌론 창조 이야기, “에누마 엘리쉬”와 매우 유사함을 지적하고 있다.* 에누마 엘리쉬는 마르둑이 혼돈의 신 티아맛을 제압하고 바빌론 만신전의 왕으로 등극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티아맛은 여기서 “바다”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아마도 고대 바빌론 사람들은 파도가 휘몰아치고, 때로는 배를 뒤엎기도 하는 바다를 혼돈의 대상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이는 안정적인 삶의 토대가 되는 땅과 대비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런 신화적인 배경에서 이해할 때 우리는 바다가 창조 이전의 혼돈의 상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구약성서의 많은 곳에서 רוח אלהים은 “하나님의 영/신”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특정한 사람에게 임해 감동을 주는 경우에, “하나님의 영/신”으로 번역된다(예. 창41:38; 출31:3; 35:31; 민24:2; 삼상10:10 등). 이런 용례들과 비교해 볼 때, 창조 기사에서 רוח אלהים을 “하나님의 영/신”으로 직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만 רוח אלהים은 창조 이전의 혼돈의 상태를 상징하는 “물”을 잠재우고, 질서 있는 창조 세계를 예비하는 힘이자 하나님의 영의 속성 중 하나인 “하나님의 바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라고 볼 수 있다.

רוח אלהים을 “하나님의 바람”으로 이해할 때, 그 뒤에 이어 나오는 동사인 מרחפת(메라해펫)의 번역 또한 이와 연관해서 생각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서의 창조 기사를 고대 근동의 신화 배경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의 바람과 혼돈의 물 사이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평화롭기 보다는 맹렬한 싸움에 가깝다. 혼돈의 물이 높은 파도를 내며 무질서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바람은 이를 힘으로 잠재우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 개정개역이나 영어 NIV의 번역과 같이 “운행”(hovering) 하고 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편, 유대 영어 성서 번역인 NJPS는 이를 “휩쓸다”(sweeping)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필자가 언급한 하나님의 바람과 혼돈의 물 사이의 맹렬한 싸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번역인 것 같다.

מרחף는 ר.ח.פ의 피엘 분사형인데, 피엘 동사형은 신명기 32:11에 한번 더 나온다. 신명기 32장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독수리에 비유하고 노래하고 있다. 이 구절은 어미 독수리가 둥지를 어지럽혀서 새끼를 떨어뜨려 날개 짓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때 ירחף(예라해프) 동사가 나오는데 이는 떨어지는 새끼를 향해 어미가 아래로 내리 꽂으며(Gliding down; NJPS) 날아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즉, 새끼를 받기 위해 바람을 가르며 잽싸게 날라가는 독수리 어미를 묘사하는 것이다. 한글 개정 개역과 NIV는 창세기 1:2과 유사하게 “(새끼 위에) 너풀거리다” (hovering)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역시 어울리지 않는 번역이다.

 이 관점에서 רוח אלהים은 “하나님의 바람”으로 מרחף는 “휩쓸다”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고대 근동의 신화 배경에서 이해한다 할지라도, 창세기 1장의 물은 절대로 “신”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저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연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의 저자는 고대 근동의 신화 배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혼돈의 물은 바빌론 신화의 “티아맛”과 같은 “신”이 아니라 창조의 힘인 “하나님의 바람” 아래에서 힘없이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창세기 창조 기사의 저자에게 있어서 “신”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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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Alexander Heidel, The Babylonian Genesis: the story of the creation,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