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방식: 바퀴달린 보좌, 그리고 마음의 감동 (עור רוח)

본문: 스 1:1

작성: 알파알렙 (kks@alphalef.com)
작성시간: 2021-09-04 07:30:56
수정시간: 2021-09-04 07:31:07
조회수: 1278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방식: 바퀴달린 보좌, 그리고 마음의 감동 (עור רוח)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주전 587(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다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버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비극은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1.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더이상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다는 것인가?

  2. 유다 왕조의 몰락 이후 유다 백성들을 통치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제국의 왕들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는 유효한 것인가?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과 그 주변 민족들이 생각하는 물리적인 성소의 존재 의미는 아주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물리적인 공간과 신상 안에 신성이 실제로 머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가 적들에 의해 파괴되고 신상이 약탈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이 거할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곧 그 신이 그 백성을 떠나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물리적인 신성의 개념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 말기 실로 성소에 있던 법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빼앗겨 버렸을 때, 엘리 제사장은 충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만삭이었던 그의 며느리가 갑자기 아이를 해산하게 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אִי־כָבֹוד 이-카보드)이라 짓습니다(삼상 4:21). 이 아이의 이름은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겨 버린 상황을 상징하는데, 곧 “영광(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음”을 의미합니다(삼상 4:22). 이러한 이름은 법궤가 빼앗긴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난 것이라 여겼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 인식을 반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와의 집이라 여겨졌던 성전이 다 무너져 내려 버렸으니, 유다 백성들의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인식은 완전히 착각이었습니다. 성전의 시작은 움직이는 성소, 즉 성막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광야를 행군해 나아갔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움직이는 성소였던 성막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장소에 머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은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에서도 또한 잘 드러납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사무엘상 7:5-9)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실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완전히 정착한 이후에 성전 건축을 허락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은 솔로몬 때에 이르러 실현되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물에 머물기 시작하셨던 것일까요? 성전과 하나님의 역사의 본질은 성전 건축 후에 하나님 앞에 드렸던 솔로몬 왕의 기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תִּשְׁמַע אֶל־מְקֹום שִׁבְתְּךָ אֶל־הַשָּׁמַיִם)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왕상 8:30)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성전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계신 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만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사함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고정된 성전이 건축된 이후에도 사실 상 성전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그러한 공간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본질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통해 바로 잡히게 됩니다. 에스겔서는 바로 이 성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잘못된 우상들이 섬겨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성전에서 장엄하게 퇴장하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의 보좌에 바퀴가 달려 있다고 묘사하는 대목입니다(겔 10:16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나아가고). 

 

에스겔서에서 묘사되는 바퀴가 달린 보좌 (상상도)

 

하나님 보좌의 바퀴는 바로 하나님께서 어느 특정한 곳에 머물러 계신 분이 아니라 어디든 계시는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통해 보았을 때 바퀴 보좌에 계신 하나님은 성소에서 나와 아예 성전 밖으로 나가셔서 동쪽으로 향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겔 10:18-19)  …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본 환상이 나를 떠나 올라간지라 (11:23-24)

 

하나님께서는 왜 자꾸만 동쪽으로 이동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그 동쪽은 바벨론이 있는 방향이었고 거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즉, 성전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것도 아니고, 바벨론인들이 섬기는 신보다 하나님께서 무력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겔 11:16)

 

우리가 성경에서 깨달을 수 있는 성전의 개념은 더이상 물리적인 건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우주적인 성전의 본질은 성전의 파괴 이후에야 분명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유다 백성들은 누구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입니까? 다윗 왕조의 명맥이 끊어진 상황에서 유다인들이 기다려야 하는 통치자 메시아는 누구입니까? 앞서 언급한 바대로 성전 파괴를 통해 우주적인 성전의 의미를 이 백성들이 깨닫게 되었듯이, 성경은 유다 왕조의 붕괴를 통해 우주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성경은 이를 “마음의 감동”(עור רוח)이라는 표현을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은 메데를 정벌하고 자신이 세운 제국을 페르시아라고 명명한 고레스 왕에 의해 극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을 고향 땅으로 돌려 보내는 동시에, 성소를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הֵעִיר יְהוָה אֶת־רוּחַ כֹּרֶשׁ מֶלֶךְ־פָּרַס)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스 1:1)

포로민들의 귀환을 명령하는 내용을 담은 고레스 실린더

 

마음을 감동시키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 עור רוח를 직역하면 “영을 깨운다”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루아흐(רוח)라는 단어는 기본적을 “바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 단어가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에는 “영”, 혹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리적인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영”과 “마음” 또한 가시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사람의 행동을 결정 짓는 분명한 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제국의 이방왕들의 루아흐를 깨우고 움직임으로 이 세상 가운데에서 통치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비록 유다 왕조는 무너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다 넓은 지평에서 이 세상을 통치해 나가고 계심을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고레스 왕 뿐만 아니라 유다의 총독 스룹바벨과 모든 백성들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וַיָּעַר יְהוָה אֶת־רוּחַ)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학개 1:14)

 

포로기 이후 하나님의 성전은 어느 특정한 지도자의 명령과 지도력으로 건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감동은 당시 유다의 총독 스룹바벨이나 대제사장 여호수아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임했고, 그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성전 건축에 임했습니다. 왕조는 몰락했지만, 그러나 공동체 모두가 합심하여 유다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있던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마음의 감동을 통해 회복된 유다를 통치해 나가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는 한편으로는 역사의 비극으로 인식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목도하게 하였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어느때보다도 어려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역사를 예비하고 계심을 믿고 기대하며 다가올 때를 믿음으로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