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솔로몬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린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부와 명예 대신에 지혜를 구했던 이상적인 왕이었다(왕상 3장). 하지만 그의 통치가 계속될 수록 그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된 왕으로 서지 못했다. 그는 말년에 많은 부인들을 거느렸고, 이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타락을 야기했으며(11:1-8), 통일 왕국이 분열되는 빌미를 제공했다(11:11).
솔로몬의 타락상은 그가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다”고 언급하고 있는 1절로부터 시작한다. “사랑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하브(אָהַב)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듯이 이는 사람 간의 상호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랑하다”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결혼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잘 사용되지는 않는다. 구약에서 결혼은 아래와 같은 구문들로 표현된다.
לקח אשה (창4:19; 11:29; 레21:7, 13, 삿3:6; 삼상25:40; 삼하5:13; 12:10; 17:19; 왕상4:15; 에2:61; 느7:63) [1]
נשא אשה (나싸 이쌰; 삿21:23; 룻1:4; 에10:44; 대하11:21; 13:21; 24:3) [2]
חתן (하탄, 히트파엘형; 창34:9; 신7:3; 수23:12; 삼상18:21,22,23,26,27; 왕상3:1; 에9:14; 대하18:1)
위의 용례들 가운데 볼 수 있듯이 솔로몬과 바로의 딸이 결혼하는 사실을 기록하는 열왕기상의 다른 구절에서는(3:1) 아하브(אהב)가 아닌 보다 결혼을 표현하는 성경의 일반적인 표현인 하탄(חתן) 동사가 사용되었다. 즉,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다른 이방여인들을 ‘사랑했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솔로몬이 단순히 솔로몬이 이방 여자들과 결혼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고 단순히 연애하는 관계였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본 장의 다른 구절에서는 분명히 솔로몬의 ‘이방 부인들’을 거론하고 있다[3](11:8 נשיו הנכריות). 즉, 저자가 솔로몬의 결혼 관계에 있어 ‘사랑하다'(אהב)라는 표현을 사용한데에는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의 정황과 고대 근동의 정치적인 레토릭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열왕기상 11장은 솔로몬과 그 이방 부인들과의 결혼에서 비롯된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여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고대 시대의 왕의 결혼은 곧 외교 행위이자 정치 행위였다. 즉, 왕은 국제 결혼을 통해 상대국과의 정치/경제적인 상호 조약을 체결하였던 것이다.[4] 따라서 솔로몬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은 솔로몬이 결혼을 통한 외교 관계 확충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 부인을 많이 거느리는 것은 이미 신명기 율법에서 금지되고 있다 (신17:17). 신명기 17:14-20은 왕에 대한 규정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 규정들은 하나같이 왕의 고유한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다. 즉, 성경의 정치 사상의 핵심은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왕은 단순히 하나님의 대리자일 뿐이다(삼상15:1; 16:1 참조). 따라서 왕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무리하게 확장하면 안 된다. 신명기에 나타난 왕에 대한 법은 왕의 이익과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왕은 부인을 많이 거느려서는 안된다는 것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5]
또다른 한편에서 신명기 17:17은 많은 부인들이 왕의 마음을 미혹되게 할 것(개정개역 번역)이라 경고하고 있다. ‘미혹되게 할 것이다’라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סור לבב (수르 레바브)라는 구문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어떠한 대상에서 “마음이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구문이 신명기의 다른 본문에서 한번 더 등장하는데, 신명기 4:9에서는 출애굽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망각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סור לבב (개역개정. 그 일들이 네 마음 속에서 떠날까) 구문을 사용하였다. 즉, 이와 연계해서 이해하면 왕이 많은 부인들을 거느리게 된다면, 그 부인들이 왕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열왕기상 11장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2-4절에서는 סור לבב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표현인 נטה לבב(나타 레바브) 구문으로[6] 솔로몬이 많은 부인들을 둔 결과 “그의 마음이 다른 신들로 향했음”(개역개정. 마음을 돌이켜)을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 방식은 앞서 열왕기상 8장에 나타난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솔로몬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7] 즉, 솔로몬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율법을 어긴 결과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솔로몬이 다른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다”라는 표현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솔로몬이 “사랑했다”라는 표현은 열왕기상에서 두 번 나온다. 한번은 위에서 언급한 11:1이고, 다른 한번은 3:3에 등장한다.
왕상 3:3 |
왕상 11:1 |
וַיֶּאֱהַ֤ב שְׁלֹמֹה֙ אֶת־יְהוָ֔ה 솔로몬이 야웨를 사랑했다. |
וְהַמֶּ֣לֶךְ שְׁלֹמֹ֗ה אָהַ֞ב נָשִׁ֧ים נָכְרִיֹּ֛ות רַבֹּ֖ות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다. |
즉, 성경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אהב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솔로몬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바꾼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사랑하다”라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고대 근동의 정치적인 레토릭을 이해할 때 더욱 부각된다.
고대 근동의 히타이트 제국에서 생성된 국제 조약 문헌을 보면 흥미롭게도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이 표현은 양 국가들이아 통치자들 사이의 우호 관계를 표현하는 정치 용어이다.[8] 이러한 레토릭은 솔로몬 왕이 되었을 때, 두로 왕 히람과 다윗왕의 관계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또한 나타나고 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כִּ֣י אֹהֵ֗ב הָיָ֥ה חִירָ֛ם לְדָוִ֖ד כָּל־הַיָּמִֽים) (왕상 5:1. 개역개정) [9]
즉, 위의 구절은 히람이 정서적으로 다윗을 사랑했다기 보다는 다윗과 정치적으로 우호 계약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솔로몬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10] 이러한 정치적인 레토릭은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나타내는 데에서 또한 사용되고 있다.
וְעֹ֥֤שֶׂה חֶ֖֨סֶד֙ לַאֲלָפִ֑֔ים לְאֹהֲבַ֖י וּלְשֹׁמְרֵ֥י מִצְוֹתָֽי׃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20:6. 개정개역)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마치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체결된 정치 조약처럼 둘 사이에서 지켜야할 법령(율법)을 잘 지킬 때 유지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충성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하려 했던 변질된 솔로몬의 정치적인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후계를 통해 통일 왕국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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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외에도 이 구문은 구약성경에서 약 90여회 등장한다.
[2] 일반적으로 이 표현이 주로 후대의 책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לקח אשה 보다 비교적 후대에 사용했던 구문으로 생각된다.
[3] 개역개정에서는 נשיו נכריות를 그의 이방 여인들이라고 적고 있다. אשה(이쌰, 복수형 נשים 나씸)는 성경에서 기본적으로 ‘여인'이라는 말을 의미하지만, 남자와 연관되어 나올 때 ‘그 남자의 부인'을 일컫는 말이다.
[4] 1Kings, Olam HaTanach, 119 (Hebrew)
[5] Joshua Berman, Created Equal, (Oxford: Oxford Univ., 2008), 61. 신17:17은 단순히 이방여인을 많이 거느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부인 자체를 많이 거느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6] סור와 נטה는 각기 “멀어지다”와 “향하다”를 의미하고 있어 의미적으로 반대이다. 하지만 공통되게 לב(마음)와 함께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구문이다.
[7] 8:58 להטות ללבנו אליו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개역개정)
[8] Joshua Berman, Created Equal, 34.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엘 마르나 서신(기원전 14세기)의 예가 인용되어 있다(페니키아의 비블로스 왕이 이집트의 바로에게 반란의 소식을 보고하는 내용): “도시를 보십시오! 도시의 절반이 나의 주군이 아닌 반란을 일으킨 Abd-Asir-ta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9] 히브리어 본문은 5:15이다.
[10] Joshua Berman, Created Equal, 34.
솔로몬이 사랑한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