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행동의 시제적 특징

본문: 에 5:1

작성: adoreyou (#724)
작성시간: 2022-10-01 09:23:58
조회수: 503



1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우리말 번역의 이 표현은 사실상 원어적으로보면 "그 떄 그 왕은 그 왕궁에서 보좌에 앉아서 그 내전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다.

그래서 후궁들하고 놀고 있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스더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에스더가 들어왔다는 시간적 시제적 특징이 있다.

 

유성이 지나가서 하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이미 바라보고 있는데 유성이 지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상 하늘을 어떤 이유로 이미 바라보고 있을 때 유성이 지나가는 것이 훨씬 감동적이다.

왕이 후궁들하고 놀다가 에스더를 바라봤으면 무안하고해서 더 화를 내고, 허락없이 들어온 것에 노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입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왕비가 자신을 단장하고 들어왔기에 너무 사랑스럽고, 은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이다.

에스더가 들어오기 전에 그 문쪽을 바라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듯 하다.

5장의 이후의 이야기도 왕이 에스더보다 몸과 행동과 마음이 먼저 앞서 있다.

영화는 허락없이 들어온 에스더를 향하여 신하들이 칼을 뺴어 죽이려고 할 때 극적으로 금 규를 내밀었으나

실제는 신하들이 칼집에 손을 가져가기도 전에 왕이 그보다 먼저 에스더를 보자마자 어여쁘고 사랑스럽고 은혜를 베풀기를 원해서 

금 규를 내민다.

이 후에도 왕비가 잔치에 초대할 때도 하만을 급히 오라고 부르고,

왕이 왕비가 원하는 주고자 하는 마음도 먼저 애타고, 급하다.

목숨을 걸고 왕앞에 나아가는 에스더 본인은 한치앞도 이 상황의 전개를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왕을 통하여 에스더보다 먼저 은혜의 지붕을 덮어두셨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면서 낭떨어지에서 떨어트리면

새끼는 자신이 어떻게 될지 한치앞도 알 수 없으나, 부모는 이미 그 아래에서 날개를 활짝펴고 새끼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