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 여인 룻은 히브리어를 얼마나 잘 했을까?

본문: 룻 2:21

작성: 알파알렙 (kks@alphalef.com)
작성시간: 2019-09-10 20:12:24
수정시간: 2019-09-21 08:52:05
조회수: 2548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의 과정을 통해 저자가 본래 의도했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거나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번역의 과정 가운데 잘못 전달될 수 있는 부분은 의미만은 아닙니다. 소설이나 이야기 문체를 가진 작품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표현하는 말 표현 방식이나 말투는 저자에 의해 직접 언급되지 않은 그 인물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번역을 통해 이러한 섬세한 언어적인 표현들이 생략되어 버리는 경우가 다분히 있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 여인이 훗날 다윗의 조상이 된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바로 룻기의 중요한 테마입니다. 이 이방 여인 룻은 마태복음의 첫 장에 거론되기도 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성서의 저자는 이러한 룻의 이방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아스는 2:8에서 아래와 같이 룻에게 이야기를 하고, 룻은 나오미에게 그녀가 들은 바를 전달하는데 이 내용은 21-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8 보아스의 당부

וַיֹּאמֶר֩ בֹּ֨עַז אֶל־ר֜וּת הֲלֹ֧וא שָׁמַ֣עַתְּ בִּתִּ֗י אַל־תֵּלְכִי֙ לִלְקֹט֙ בְּשָׂדֶ֣ה אַחֵ֔ר וְגַ֛ם לֹ֥א תַעֲבוּרִ֖י מִזֶּ֑ה וְכֹ֥ה תִדְבָּקִ֖ין עִם־נַעֲרֹתָֽי׃

보아스가 룻에게 말했다. “내 딸아 듣지 못했느냐.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도 옮기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2:21 룻이 나오미에게 전달하는 말

וַתֹּ֖אמֶר ר֣וּת הַמֹּואֲבִיָּ֑ה גַּ֣ם׀ כִּי־אָמַ֣ר אֵלַ֗י עִם־הַנְּעָרִ֤ים אֲשֶׁר־לִי֙ תִּדְבָּקִ֔ין עַ֣ד אִם־כִּלּ֔וּ אֵ֥ת כָּל־הַקָּצִ֖יר אֲשֶׁר־לִֽי׃

모압여인 룻이 말했다. “또 그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내게 속한 모든 추수를 마치기까지 내게 속한 소년들과 함께 있으라’”

 

2:22 나오미가 이를 듣고 룻에게 전달하는 말

וַתֹּ֥אמֶר נָעֳמִ֖י אֶל־ר֣וּת כַּלָּתָ֑הּ טֹ֣וב בִּתִּ֗י כִּ֤י תֵֽצְאִי֙ עִם־נַ֣עֲרֹותָ֔יו וְלֹ֥א יִפְגְּעוּ־בָ֖ךְ בְּשָׂדֶ֥ה אַחֵֽר׃

나오미가 그녀의 며느리 룻에게 말했다. “내딸아, 그 사람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여기서 룻은 “소녀들”과 “소년들”을 혼동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보아스와 나오미는 소유격을 표현함에 있어서 נערותי나 נערותיו와 같이 접미어를 붙여서 말하고 있는 반면, 룻은 נערים אשר-לי와 같이 풀어서 소유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히브리어를 직접 배워본 사람이라면 נעריי와 נערים שלי가 갖는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압 여인 룻은 보다 쉬운 방식으로 히브리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고 나오미와 보아스는 보다 능숙하고 수준 높은 히브리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룻이 “소녀들”을 “소년들”이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룻은 아마도 아래의 보아스의 말 때문에 소년들이라 혼동했을 것입니다. 

 

2:9 보아스의 말

עֵינַ֜יִךְ בַּשָּׂדֶ֤ה אֲשֶׁר־יִקְצֹרוּן֙ וְהָלַ֣כְתְּ אַחֲרֵיהֶ֔ן הֲלֹ֥וא צִוִּ֛יתִי אֶת־הַנְּעָרִ֖ים לְבִלְתִּ֣י נָגְעֵ֑ךְ וְצָמִ֗ת וְהָלַכְתְּ֙ אֶל־הַכֵּלִ֔ים וְשָׁתִ֕ית מֵאֲשֶׁ֥ר יִשְׁאֲב֖וּן הַנְּעָרִֽים׃

“그 여자들의 베는 밭에 눈을 두라. 그리고 그 여자들을 뒤 따라가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목이 마르면 그릇으로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셔라.”

보아스는 소유격 대명사 접미어 הן, 그리고 부가 접미어 ן과 소년들 נערים 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룻의 출신지인 모압어의 남성 대명사 어근은 공교롭게도 נ 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 소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나오미에게 “소년들”과 함께 있으라 했다고 말을 전했고, 상황을 파악하는 나오미는 다시 “소녀들”로 교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룻이 이야기한 נערים이 필사상의 오류라고 주장합니다. 혹은 번역으로 된 성경을 보면서 “소년들”과 “소녀들”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미묘한 문학적인 장치를 이해함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습니다. 룻의 익숙지 못한 언어는 종교적, 민족적 연관성이 없는 이방여인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다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참고자료
Timothy Lim, Ruth's Hebrew (https://www.academia.edu/1962829/Ruths_Heb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