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필자는 מרחפת 동사(רחף)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나누어 보았다. 필자는 그 글에서 이 동사가 “운행하다”(to hover)라는 의미보다는 “휩쓸다”(to sweep over)의 의미가 좀 더 원문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동사의 시제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나누어보고자 한다.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 체계는 쉽지 않다. 이는 문법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우리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시제 체계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 체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히브리어로 성서를 읽을 때 수박 겉핥기 식의 기계적인 해석만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조만간 히브리어 시제 체계에 대한 글을 잠시 연재하고자 한다.
우리말 개정 개역 성경 번역에 따르면 창세기 1:1-2은 아래와 같이 해석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히브리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י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창조의 사건은 과거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동사는 본래 과거형이다. 그러나 한글 번역은 현재형으로 처리되었는데 어감상 현재형이 더 어울리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히브리어 동사를 살펴보면 “창조하다”(ברא), “-하다”(היה) 등의 동사 시제는 완료형(perfect)으로 여기서는 단순 과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창조했다”, “-했다”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동사인 “휩쓸다”(רחף)는 완료형이 아니라 분사형(participle)이다.
현대 히브리어의 분사형은 “현재형”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서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단순히 “현재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떻게 과거의 창조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현재형 시제가 어울릴 수 있겠는가? 성서히브리에서 많은 경우 분사형은 앞에 기술된 사건과 “동시적” 사건임을 강조하는 시제형이다. 즉, 앞에 있었던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 세상이 공허하고 흑암으로 가득찬 모습과 동시적으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1-2는 아래와 같이 해석될 수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또한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바람이 (혼돈의) 물을 휩쓸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하시기 전, 이 세상에는 암흑과 혼돈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창조를 하시기 전 이 세상을 버려두시고 계셨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창세기 기자는 מרחפת이라는 분사형 동사를 집어 넣으며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그리고 시작하실 때에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바람 역시 혼돈을 잠재우고 계셨다! 그리고 결국 혼돈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 행위(ברא)를 통해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세우셨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가운데에는 여전히 악이 번성하고 의롭고 죄없는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다. 시편 기자들도 하나님의 숨겨진 얼굴을 찾으며 고통 가운데 부르짖기도 했다. 비록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고, 진리가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창세전부터 일하기 시작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신다. 창세기 2장 이하의 내용은 창세기 1장에서 만들어진 질서가 인간의 죄에 의해 어떻게 혼돈해져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혼돈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손들을 허락해 주셨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가운데 새로운 질서와 진리를 만들어가고 계심을 깨달아야 하고, 우리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
מרחפת의 시제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