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의 "태초에" 번역 질문


나무 (#66) | 2019-09-25 17:35:03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어서요.. 

창세기 1:1에 관한 글에 "태초에"라는 해석 대신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말씀하신 히브리어 어법과 다르게 "태초에"라고 해석해 온 이유가 있을까요??


알파알렙 (kks@alphalef.com) | 2019-09-25 18:50:40(수정됨)

질문 감사합니다. ^^;; 사실, 제가 유대인 주석가의 견해와 성서의 다른 본문을 통해 보여드린 것은 말씀하신대로 창세기 1:1의 해석의 가능성입니다.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법적으로 볼 때 그러한 해석이 합당하지 않을까하는 저의 견해를 전달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태초에"라는 해석은 그리스어 성경 번역인 70인역(LXX)의 전통해서 비롯되었습니다. 70인역에서 בְּרֵאשִׁית (베레시트)를 ἐν ἀρχῇ 라고 해석을 했는데요, 이 구문의 의미가 "in the beginning", 즉 "태초에"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70인역을 번역한 사람들도 유대인들인데, 이들은 베레시트를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문법이해를 반영한 셈입니다. 

특히, 신약 성서가 구약을 인용할 때에는 히브리어 본문 보다도 70인역의 구약 본문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창세기 1:1의 구문 구조를 인용하고 있는 요한복음 1:1, 역시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적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70인역을 기독교인들에게 빼앗겼다고 말할 정도로, 70인역의 영향은 오랫동안 기독교에서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경 번역 역시 70인역의 전통의 영향을 받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여기에 첨언해 주실 분(다른 의견도 환영) 있으시면 해 주세요.. ^^;;


나무 (#66) | 2019-09-25 19:01:44

그렇군요. 빠른답변 감사드립니다. 


늘새롬 (#341) | 2020-11-04 19:59:39

코닷에 실린 [태초]관한 내용입니다.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http://www.kscoramdeo.com/bbs/view.html?idxno=3474&sc_category=

요1:1과 창1:1의 '태초' 번역 차이

요1:1‘태초’가 헬라어로 아르케(ἀρχή)인데, 창1:1의 태초는 히,베레쉬트(בראשית)를 LXX(70인역)은 아 르케(ἀρχή)로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창1:1의 태초와 는 다른 단어로서 하나님의 영원전 존재 시간을 뜻합니다. 태초라는 아르케(ἀρχῇ)는 영원한 시간을 뜻하므로 반대어 가 없으나 창1:1의 태초 베레쉬트(תישארב ,시작, beginni ng)는 반대어, 아하리트( אחרית,끝, ending)가 있습니다. 요1:1의‘태초에’를 영역본 K.J.V, R.S.V 등에는 in(the) beginning(시작)으로 번역헸고 T.E.V는 Before the world was created, 즉‘세상 창조하시기 전’(창세 전)으로 하 나님의 영원하신 존재 시간을 잘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창조하시기 전부터 말씀은 계셨다'로 번역될 수 있 습니다.


adoreyou (#724) | 2025-02-19 23:54:57

태초에

בראשׂית 베레쉬트는 "태초에"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정말 "원초적 직역"으로 번역하면 다른 의미도 가능합니다.

접속사 베(ב)는 ~안에서 입니다. 그리고 ראשׂית 레쉬트는 "처음, 우두머리, 장자" 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초적 의미로 직역하면 "장자 안에서"도 됩니다.

곧 하나님이 그분의 장자안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가 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하면 창세기 1장의 주석이 요한복음 1장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은 이 태초에를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해,달,별의 빛이 있기전에 있었던 그 태초의 생명의 빛이 무엇인지를 주석해 놓은 창세기 1장의 사도요한의 주석이 요한복음 1장입니다.

우리말의 "굴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조기라는 생선을 말려서 왕에게 진상한 생선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굴비"라는 단어의 "원초적 직역"은 " 굴복할 굴,아니 비"로써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 굴비의 원초적 직역의 의미입니다.

고려시대 이자겸이 영광으로 좌천을 당하고, 왕에게 끝까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조기를 말려서 진상하면서 이름을 "굴비"라고 지은 것이 유래입니다.

베레쉬트의 하나님이 사용하신 숨겨진 직역이 "장자 안에서 "입니다.

이자겸이 "꿀비"에 그 직역의 의미인 "굴복하지 않겠다"를 감춘거 같이, 하나님은 베레쉬트의 직역적 의미 "장자안에서"를 그 안에 감추어 두셨고,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1장에서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lee3578@naver.com